notice tag msg admin

Conte

2018.02.07 01:54

  돌은 늘 차였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발길질에 차이고, 높새바람에 차이고, 강줄기의 거센 물결에 차였다. 돌은 스스로 굴러가는 법이 없었다. 수많은 돌무더기 속에 그들은 뒤채이며 으스러졌다. 돌은 으스러지면서도 멈춤이 없었다. 끊임없이 제 몸과 제 주위 것들을 부수어댔다. 돌이 지나가면 온 사방의 물건들은 제 상태로 남아나지 못했다. 부숨은 돌의 의지가 아니었으나 돌의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 돌의 운명은 파괴에 있었다.


  그날도 돌은 차였다. 돌은 어디에나 있었고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민수는 돌을 공 차듯 발길질하면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적막한 산동네의 유일한 취미거리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학교로부터 1시간여를 걸어야 했다. 능선을 따라 그는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가 지루하면 발길질을 했고, 발길질에 쓸리는 돌들은 사방으로 튀며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만큼 적적한 곳이었다. 흔한 새도 없었고, 꽃도 듬성듬성 핀 게 전부였다. 산은 끝도 없이 길었는데 그런 곳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것이 기이하긴 했지만, 민수는 개의치 않았다. 벌써 3년째 그 길을 제 집처럼 오갔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다는 듯 민수는 돌산을 걸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느리다는 것, 그것은 외로움을 뜻했다. 친구들은 민수와 놀기를 꺼려했다. 대화란 악수와 같은 것이라 말을 건네면 돌아오는 반응을 으레 기대하기 마련이었지만 민수는 늘 느렸다. 친구들은 그런 민수를 싫어했다. 차라리 느리기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따금씩 친구들의 말을 이해못해서 안절부절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설명해주기 보다 자기들끼리 놀았다. 놀이에서 점점 민수를 배제하는 횟수가 늘었다. 민수는 늘 혼자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그랬다. 민수에겐 좀처럼 말을 건네고 받을 상대가 없었다. 그는 돌을 차며 놀았다. 돌이 유일한 그의 친구였다. 차면 차여주는 돌. 그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돌. 민수는 잿빛 돌이 좋았다. 돌은 늘 민수 곁에 있어주었다.


  하교 시간이었다. 민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을 차며 걸어가고 있었다. 괜히 힘껏 차보고 싶다. 매일같이 따돌리는 아이들이 미웠다. "자기들이 뭔데!" 작달막한 돌을 후려 찼다. 돌은 바람을 타고 날았다. 생각보다 멀리 날았다. 돌이 민수를 앞서가던 영환의 허벅지를 때렸다. "악." 하굣길의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찢겼다. 외마디 외침이 적막을 불렀다. 


  민수는 떨었다. 맞히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실수였다. 그는 동공이 흔들리고 머릿속은 하얘졌지만 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영환이 그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숙인 채 안절부절못하는 민수를 노려봤다. 

  "너, 일부러 그랬지?"

  민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바싹 마른 채 달라붙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희들이 놀아주지 않아서가 아니야. 이건 그냥 실수야. 민수는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얼어버렸다.

  영환은 화가 났다. 사과 한 번이면 될 일이었다. 미안하다 한 마디면 그깟 돌쯤이야.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민수가 괘씸했다. 늘 자기 멋대로인 녀석, 딱지 치기할 때에도, 말타기를 할 때에도 저놈은 늘 어버버거려. 맨날 재밌는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기나 하고. 같이 안 놀아줬다고 지금 시위하는 거야? 그런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는 민수를 밀쳐 넘어뜨려 버렸다.

  

  민수의 참았던 눈물샘이 폭발했다. 서러웠다. 돌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게 억울했다.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민수는 제 주변에 있던 돌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영환에게 던져버렸다. 돌이 영환을 스쳐지나갔다. 뾰족한 돌에 맞을 뻔한 영환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놈아시키. 미쳤나. 욕을 한바탕 쏟아부으며 민수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민수가 계속해서 돌을 던져댔기 때문이었다. 영환은 멀찌감치 서서 욕을 했다. 돌은 계속해서 영환에게 날아들었다. 영환을 맞추진 못했지만 돌은 계속해서 영환에게 던져졌다. 던져진 돌은 벽에 맞고 튀기며, 바닥에 맞고 구르며 흩어져 갔다. 불그레 달아오른 민수의 얼굴 위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흘렀다.


  흥분한 영환이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네가 이게 얼마나 아픈지 한 번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민수를 향해 돌을 세차게 후려쳐 던졌다. 그간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던 돌은 민수의 얼굴을 강타하고 말았다. 민수는 얼굴을 붙잡고 고꾸라졌다. 울음이 둘 사이의 공간을 가득 메웠다. 세찬 울음이 공기 중에 흩뿌려졌다. 

  민수의 손에 핏물이 흘렀다. 설움과 핏물이 민수의 눈물에 섞여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영환은 크게 당황해 줄행랑을 쳤다. 내 잘못은 아니라고.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모든 건 저놈이 먼저 시작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도망쳤다. 실은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돌에 핏물과 눈물이 그득히 묻은 채 나뒹굴었다. 돌도 눈물을 흘린다면 지금 그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회백색의 돌에 붉고 투명한 액체가 뒤범벅이 되었다. 돌은 자신의 운명을 탓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돌을 슬프게 했다.  돌이 돌인 것은 돌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날 민수는 돌과 함께 세상이 끝난 듯 울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같이 울어 줄 돌이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Con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8.02.07
comment 0
< 1 >

티스토리 툴바